찬미예수님
신부님, 이00 프란치스코입니다.
신부님과 수녀님, 교정사목부에서 여러모로 신경을 써주셔서 많은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. 감사합니다.
몇백킬로미터 밖에서 일어난 태풍의 영향에도 이곳에 간간히 강풍이 불어오는데 저의 가습에서 터져버린 이 용암 덩어리를 무엇으로 막을 수 있으며 식힐 수 있겠습니까.
제가 얼마나 큰 잘못을 했으면 주님께서 이토록 아픔을 시련을 주실까. 생각하고 또 생각해 봅니다.
“누구든지 청하는 이는 받고, 찾는 이는 얻고, 문을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다.” 하셨거늘 이곳에 수감된 후로 단 하루도 빠짐없이 기도 했나이다.
저의 아내와 딸 아이에게 치유의 은총과 희망의 은총을 내려 달라고... 그토록 간절히 매달렸건만 결국 은총은 주시지 않고 크나큰 시련만을 남겨 주셨네요.
주님이 원망스럽고 너무나도 미웠습니다.
그렇게 큰 일을 저에게 주시고는 지금껏 침묵으로 일관하시는데 도저히 주님의 뜻을 헤아리지 못하겠습니다.
저의 기도가 너무도 부당했던 것일까요.
피해자들을 위한 기도나 반성의 기도는 별로 안 하면서 욕심 많게 제 가족만 챙겨 주님께서 화가 나셨을까요.
그렇다면 저에게 기도하는 것을 가르쳐 주십시오.
아직 믿음이 부족하여. 신앙심이 깊지 못하여 주님의 맘에 안 드는 어린양이오니 부디 저에게 알려주시옵소서.
사실 딸아이 때문에 힘을 내보려 하지만 매일 매일 무너집니다.
그렇게 무너질때마다 다짐을 하고 일어나 보지만 결코 오래가지 못하고 또 무너집니다.
아무것도 할 수 없고 해줄 수 없다는 것, 이곳이 교도소 안이라는 것 앞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의구심만 들 뿐입니다.
이곳을 벗어나 아내와 함께 살아가려 했던 모든 꿈들이 사라진 지금 저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두렵습니다.
꿈도 희망도 결코 아름답지만은 않을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...
또 이대로 주님의 손을 제 스스로 놓아 버릴까봐 걱정입니다.
밥을 먹고 있는 저를 보고 잠에서 깬 저를 보고 피식 웃는 저를 보고 저는 웃습니다. 미친놈이라고...
주님께 죄인이고 저로 인하여 피해를 본 사람들에게 죄인이고 저를 믿어주고 응원해 주신 분들게 죄인이고 이젠 아내마저 저 때문에 사고를 당하고 결국 숨을 거두었는데 내가 어찌...
자책하지 말라는 주위에 말을 들을 때마다 저의 안에서 소리칩니다.
자책이 아니라 분명 나 때문이라고...
신부님, 저의 아내 유00 프란치스카가 주님의 은총으로 천국문에 들어 영원한 안식을 얻을 수 있도록, 저의 딸 유00 엘리사벳이 지금의 아픔과 고통을 잘 이겨낼 수 있도록 기도해 주세요.
저도 매일 쓰러지지만 무릎 꿇고 기도 하겠습니다.
00이 곁에 신부님과 수녀님이 계셔 주어서 다행입니다.
다시 한번 힘을 내보며 감사함에 인사 드립니다.
2020년 10월 9일 높은 담장안에서 길 잃은 어린 양